1918 - 193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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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36
20세 체육 특기생으로 양정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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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35
19세 서울에서 생활(화가는 양정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기 전까지 학교의 틀을 벗어나 생활했는데, 이 역시 생활에 얽매임을 싫어하는 화가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큰 원인이 되었으리라 짐작됨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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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32
16세 경성 제2보고 3학년 공정치 못한 처사를 일삼는 일본인 역사 교사에게 격렬히 항의하다 퇴학당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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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30
14세 보통학교를 졸업하고,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(지금의 경복중고등학교)에 입학 특별활동으로 미술반에서 활동하며 그림 그리기에 열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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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24
8세 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(지금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부속초등학교) 입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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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22
6세 서울로 이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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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18
1세 1918년 1월 8일(음력 1917년 11월 26일) 출생 (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송룡리 105번지에서 대지주였던 조부의 셋째 아들, 아버지 장기용과 어머니 이기재 사이에서 4형제 가운데 차남으로 출생)
1937 - 196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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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61
45세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출신의 동문화가들인 권옥연, 유영국, 이대원, 김창억, 임완규 등과 ‘2・9동인회’를 조직
지금의 롯데백화점 신관 자리에 있던 국립도서관 화랑에서 열린 제 1회 <2·9동인전>에 <야조도>, <산수>등 유화 두 점을 출품 -
1960
44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직을 사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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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58
42세 뉴욕의 월드하우스 갤러리가 주최한 <한국현대회화전>에<나무와 새>(1957)등 유화 3점을 출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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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57
41세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<동양미술전>에 출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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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56
40세 제5회 국전 심사위원 이후 두 차례[제8회(1959) 제18회(1969)]국전심사위원으로 위촉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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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55
39세 11월, <백우회전>에 <수하(樹下)>를 출품. 독지가의 이름을 딴 ‘이범래씨 상’ 수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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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54
38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대우교수로 취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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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53
37세 제 3회 <신사실파 동인전>에 <동>, <언덕> 등 유화 5점을 출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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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51
35세 부산으로 피란 (용두동 언저리에 방 한 칸을 얻어 살았는데, 이때부터 화가의 폭주가 시작. 전쟁은 화가가 자유롭게 그림 그리는 것을 가로막았고, 화가는 그 참기 어려운 비극의 상황을 술에 의지하며 보냄) 방황을 거듭하다 아내의 권고로 9월, 아이들과 함께 연기군 고향으로 가 어머니와 함께 지냄 (이 시절의 대표작으로 <자화상>이 있음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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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50
34세 6·25 전쟁이 발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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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49
33세 11월,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제2회 <신사실파 동인전>에 유화 13점을 출품 (화가가 참여한 본격적인 최초의 전시회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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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48
32세 12월, 화신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제1회 <신사실파 동인전>참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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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47
31세 국립중앙박물관을 사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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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45
29세 국립중앙박물관에 취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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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43
27세 9월, 제국미술학교를 졸업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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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41
25세 4월12일, 이병도박사의 맏딸 이순경(李舜卿,1920년 9월3일생)과 결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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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39
23세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(23회), 이해 4월에 일본 도쿄의 제국미술학교(지금의 무사시노 미술대학) 서양학과에 입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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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37
21세 조선일보 주최의 제2회 전국학생미전에서 <공기놀이>등을 출품해서 최고상 인 사장상과 중등부 특선상 수상
덕소시기
1963년 ~ 1974년, 12년의 덕소시기
경기도 덕소의 소박한 화실에서 그림에 몰두한 시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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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74
58세 4월, 공간화랑에서 제2회 개인전을 열고, 근작 중심으로 유화 32점을 출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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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70
54세 정초에 명륜동 집에 머물던 중 예불에 열중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. 그 길로 덕소로 돌아가 일주일간 식음을 전폐하며 아내의 첫 번째 초상화 <진진묘>를 그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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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68
52세 신세계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제6회 <앙가주망전>에 참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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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64
48세 11월 2일부터 8일까지 반도화랑에서 <장욱진 개인전>(제1회 개인전) 열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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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63
47세 경기도 덕소의 한강가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삼패리(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) 395-1번지에 슬라브 양옥을 짓고 혼자 생활하기 시작. 이른바 ‘덕소 시절’(1963~1975) 시작
명륜동시기
1975년 ~ 1979년, 5년의 명륜동시기
덕소시기 이후 주변이 번잡해지자 서울 명륜동 집에 돌아온 시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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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79
63세 10월, 현대화랑에서 <장욱진 화집발간 기념전>을 가져 유화 25점, 판화 13점, 먹그림 18점을 출품
겨울, 충북 수안보 온천 동네 뒤의 탑동마을(충북 중원군 상모면 온천리)의 농가 한 채를 구입 -
1976
60세 잡지, 신문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산문집 《강가의 아틀리에》(민음사)를 발간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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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75
59세 덕소생활을 청산. 명륜동 양옥 뒤의 한옥을 사서, 거기에 화실을 꾸밈
수안보시기
1980년 ~ 1985년, 6년의 수안보시기
5년만에 명륜동에서 수안보의 직접 만든 작은 화실로 들어간 시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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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85
69세 여름에 수안보의 화실을 정리하고 서울로 이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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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83
67세 10월22일-29일, 연(淵)화랑에서 판화집 출판기념 판화전 개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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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81
65세 10월11일-17일, 공간화랑에서 개인전 개최
전시회에는 유화 20여 점과 먹그림을 에칭판화로 옮긴 그림 5점을 전시 -
1980
64세 봄, 수안보의 농가를 고쳐 화실로 만들면서 부인과 함께 생활. 이때부터 1985년까지 이른바 ‘수안보 시절’ 시작
용인시기
1986년 ~ 1990년, 5년의 용인시기
용인의 낡은 한옥에서 그림에 몰두한 화가 장욱진의 마지막 시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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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90
74세 12월 27일, 오후4시에 한국병원에서 선종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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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89
73세 7월, 마북리의 한옥 옆에 양옥을 완성하고 입주
가을, 미국 뉴저지주의 <버겐 예술 과학박물관>에서 개최된 한국현대화전에 유화 8점을 출품 -
1987
71세 5월 28일-6월6일, 두손 화랑에서 화집을 내고 개인전을 개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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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86
70세 6월12일-19일, 유화8점과 먹그림을 모아 국제화랑에서 개인전 개최
봄에 경기도 용인군 구성면 마북리의 낡은 한옥을 사서 보수
가을에는 중앙일보가 제정한 예술대상의 수상자로 지명